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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 돌아보기/수질오염 水質汚染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

by 경청 2024.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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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는 한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해양 오염 사고 중 하나로, 1995년 7월 23일 오후 2시 20분경 전라남도 여천군 남면 소리도 앞 해상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씨프린스호는 14만 톤급의 대형 유조선으로, 암초에 부딪힌 후 침몰하면서 대량의 벙커A유와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었습니다. 이 사고는 해양 생태계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장기적인 피해를 남겼으며, 한국 사회에서 해양 오염의 위험성과 대처 방안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고의 배경과 경위

씨프린스호는 1990년 일본 히타치 조선소에서 건조된 14만 4,567톤급의 초대형 유조선으로, 길이 326m, 너비 56m, 높이 28m의 거대한 선박이었습니다. 사고 당시 씨프린스호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소속이었으며, 키프로스 국적의 배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1995년 7월 22일, 씨프린스호는 광양만에서 61만 배럴(약 85,000톤)의 원유를 싣고 출항하여 서해안을 따라 항해 중이었으며, 목적지는 한국의 주요 정유 시설들이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항해 중 씨프린스호는 태풍 '페이'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태풍 페이는 7월 17일에 발생하여 7월 24일 한반도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측된 강력한 태풍이었으며, 당시 바람의 최대 풍속은 초속 35m에 달했고 중심 기압은 960hPa로 기록되었습니다. 씨프린스호는 태풍을 피해 피항하는 도중, 7월 23일 오후 2시 20분경 전라남도 여천군 소리도 북동쪽 1.5km 해상에서 암초에 부딪히면서 좌초되었습니다. 이후 선박의 엔진에서 불이 나고 폭발이 발생하면서 선체 뒷부분이 침수되었습니다.

좌초와 폭발

좌초 당시 선박의 하부가 암초에 크게 손상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직후 씨프린스호는 무선으로 상황을 보고했으나,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는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박의 엔진실에서 발생한 화재는 7월 24일 오후 7시경에야 진화되었지만, 이미 막대한 양의 기름이 바다로 흘러들어간 상태였습니다. 당시 씨프린스호는 약 5천여 톤의 벙커A유와 원유를 싣고 있었으며, 이 중 상당량이 유출되었습니다. 기름띠는 조류와 바람에 의해 인근 해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남해안 일대는 치명적인 해양 오염을 겪게 되었습니다.

구조 및 방제 활동

사고가 발생한 직후, 씨프린스호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 20명 중 19명은 무사히 탈출하여 인근 소리도로 대피했으나, 1명은 실종되었습니다. 이 실종자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이 실종자 1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씨프린스호에서 유출된 기름을 방제하기 위해 해양경찰과 관계 당국은 총 120척의 방제선과 45대의 헬기를 포함한 대규모 장비를 동원했습니다. 또한, 유조선 호남 다이아몬드호를 동원하여 씨프린스호의 남은 원유를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기상 악화와 작업 지연으로 인해 방제 작업은 차질을 빚었습니다. 원유를 옮기는 작업은 태풍 '제니스'의 영향으로 더욱 어려워졌고, 결국 8월 9일부터는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전체 방제 작업은 해상에서 19일간, 해안에서 5개월간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16만 6,905명의 인력과 8,295척의 선박이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오일펜스 13,766m, 유화수기 126대, 유흡착제 239,678kg, 유처리제 717.6kL 등이 사용되었으며, 총 방제 비용은 180억 원에 달했습니다. 씨프린스호는 11월 26일에야 인양되었으며, 선체의 일부는 이후 필리핀으로 예인되었으나, 필리핀 수비크만 앞바다에서 악천후로 인해 침몰했습니다.

피해와 여파

기름 유출로 인한 오염은 전남 여천군 소리도 인근을 넘어 경남 남해, 부산, 울산, 포항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집계된 피해는 총 231건에 달했으며, 양식장 피해 면적은 3,295헥타르에 이르렀습니다. 기름띠는 204km의 해상과 73km에 달하는 해안선을 오염시켰고, 오염된 해역에서는 어류와 어패류의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당시 피해를 집계한 여천군 자료에 따르면, 어민들이 입은 재산 피해는 443억 5,600만 원에 달했습니다. 특히 방제 작업 과정에서 사용된 유화제는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로,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는 이후 수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쳐, 각종 어패류의 수확량은 사고 이전의 절반에 그쳤으며, 생태계 복원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여수 소리도 지역에서는 잔존 유분이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어족 자원이 감소하고 있다는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주장이 계속되었습니다.

보상 및 재판

씨프린스호 사고로 피해를 입은 어민들은 735억 5,400만 원의 보상을 청구했으나, 실제로 지급된 보상액은 502억 2,700만 원에 그쳤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어민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피해를 입증할 자료가 부족해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1996년 5월 6일, 피해 어민들은 국제유류오염피해보상기금(IOPC Fund)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997년 6월 5일에 IOPC 측이 어민들에게 추가로 102억여 원을 보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씨프린스호의 선장과 호유해운은 사고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1996년 1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선장에게는 징역 1년이, 호유해운에는 벌금 3천만 원이 선고되었습니다. 또한, 구난 작업 중 방제비를 허위로 청구하여 1억여 원을 착복한 관계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사고의 의의와 평가

씨프린스호 사고는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기름이 바다에 유출되면 수면 위에 기름띠가 형성되어, 바다를 오염시키고 그 영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며 해양 생태계를 황폐화시킵니다. 이 사고를 통해 대형 유조선의 사고가 해양 환경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고양되었으며, 이후 한국 정부는 해양 오염 방지법을 개정하고, 해양 방제 업무를 해양경찰청으로 일원화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사고를 계기로 유조선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도 강화되었습니다. 한국 연안에는 유조선의 통항을 금지하는 구역이 설정되었고, 5천 톤 이상의 유조선은 이중 선체 구조로 건조해야 하는 규정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해양 오염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는 한국 해양 환경 보호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이후에도 해양 오염 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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