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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돌아보기/한국역사 韓國歷史29

단군에서 무당까지 우리 민족사의 첫 임금 명칭은 ‘단군(檀君)’입니다. 한자명을 그대로 풀이하면 ‘박달나무(檀) 임금(君)’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고유의 호칭을 한자로 음차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원음을 추적해 보면 ‘텡그리 → 당굴·단골’의 변화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시베리아계 하늘 또는 제사장(무당)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호남 지방에서 무당을 ‘단골’ 혹은 ‘단굴’이라고 부르는 점을 고려하면, 단군과 무당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역사적 잔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군은 신인(神人)이자 무당이었으며, 고대 왕이 종교적 직능을 가진 자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무당이 왕의 역할을 맡았던 예는 신라의 제2대 왕 남해 차차웅의 기사에서도 확인됩니다. 『.. 2024. 10. 19.
4.3 제주 민중항쟁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대규모 비극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는 목호의 난과 함께 제주 역사에서 최대의 참사로 꼽히며, 여순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과 더불어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제주 4·3 사건에서 희생된 민간인 숫자는 6.25 전쟁에 이은 단일 사건 중 가장 많았으며, 이는 당시 남한 정부와 미군정, 남조선노동당 간의 정치적 갈등과 극단적 탄압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사건의 발단과 배경제주 4·3 사건의 원인 중 하나는 해방 후 제주도의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이었습니다. 해방 후 귀환한 인구의 실업 문제, 생필품 및 식량 부족, 콜.. 2024. 10. 11.
부마 민주항쟁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이다.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YH 사건과 함께 유신 정권을 붕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이후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이 사건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시작된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도입한 유신 헌법은 그의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체제에 대한 학생, 지식인, 노동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반발은.. 2024. 10. 8.
황진이 황진이(黃眞伊, 1506 ~ 1567)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詩人), 기녀(妓女), 작가(作家), 서예가(書藝家), 음악가(音樂家), 그리고 무희(舞姬)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자 뛰어난 지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중종(中宗)과 명종(明宗) 때(16세기 초, 중순경)에 활동한 기생으로, 다른 이름은 진랑(眞娘)이며, 기생 이름으로 명월(明月)이라 불렸다. 개성(開城) 출신으로, 황씨 성을 가진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생부(生父)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황진이는 뛰어난 미모와 함께 학문적 소양을 겸비하여, 시(詩), 그림(畫), 춤(舞), 음악(音樂), 그리고 성리학(性理學)적 지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유년기와 학문적 성장황진이의 출.. 2024. 9. 23.
어우동 본명: 박구마 (朴丘麻)별칭: 어우동(於宇同), 어을우동(於乙宇同)출생: 미상, 조선 충청도 음성군 음죽사망: 1480년 10월 18일, 조선 한성부직업: 시인, 서예가, 작가, 사상가, 화가, 무용가학력: 한학 수학종교: 유학 성리학분야: 시문학, 서화부모: 박윤창(朴允昌, 부), 정귀덕(鄭貴德, 모)배우자: 태강수 이동(李仝, 이혼)자녀: 번좌(番座, 딸)친척: 박성근(朴成根, 오라비)어우동의 생애어우동(於宇同, 1440년경 ~ 1480년)은 조선 전기의 여성으로, 시인, 서예가, 작가, 기녀(妓女), 무희(舞姬)였다. 그녀는 조선 왕족이자 고위 관리의 부인에서 기녀로 전락한 뒤,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조선 사회의 도덕 규범에 도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왕족의 아내였지만 이혼 후 기녀가 .. 2024. 9. 23.
희빈 장씨, 장희빈 장옥정(張玉貞)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고 비극적인 여성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녀는 1686년 숙종의 후궁으로 입궁(入宮)하며 본격적으로 왕실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왕세자(경종)를 낳았습니다. 장옥정은 뛰어난 미모로도 유명했으며, 그 미모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기록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녀의 미모는 당시 정치적 정적들마저 인정할 정도였으며, 숙종이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합니다.1. 왕비로서의 삶과 폐위장옥정은 숙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승은(承恩)을 입고 숙원(淑媛)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이후 1689년(숙종 15년),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가 폐위되고 장씨가 새 왕비로 책봉되면서 그녀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이.. 2024. 9. 23.
고조선의 멸망 고조선(古朝鮮)의 멸망은 단순한 외세 침략의 결과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정치적 혼란과 외교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건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고조선의 성장 과정과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조선의 성장과 발전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경 단군왕검(檀君王儉)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등장한 고대 국가였습니다. 초기 고조선은 농업과 수공업,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부족 연맹체였으며, 기원전 4세기경 연나라와 접촉하면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기원전 4세기 중반, 고조선은 중국 연나라(燕)와의 교역을 통해 국제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고조선의 강역은 오늘날의 랴오.. 2024. 9. 22.
조선의 멸망 조선(朝鮮)의 멸망은 약 500여 년간 지속된 한반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조선은 1392년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고려(高麗)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진 후, 1910년 일본 제국(日帝)에 의해 병합되면서 그 역사를 마감했다. 이 멸망의 과정은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압력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1. 조선 내부의 문제 1.1. 세도정치와 왕권의 약화조선 후기의 정치적 혼란은 **세도정치(勢道政治)**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정치권력은 왕이 아닌 외척(外戚) 가문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안동 김씨(安東金氏)와 풍양 조씨(豊壤趙氏)와 같은 외척 세력은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그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를 농단했다. 이로 인해 왕권.. 2024. 9. 22.
고려의 멸망 고려(高麗)의 멸망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수 세기 동안 누적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결과였습니다.  1. 권문세족(權門勢族)의 전횡과 사회적 모순 고려 말기, 권문세족은 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정치, 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토지 사유화를 통해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국가의 조세 제도를 무력화하여 국가 재정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왕권은 약화되었고, 권문세족은 중앙 정치에서 관직을 독점하며 정치를 사사화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음서제(蔭敍制)**와 같은 제도를 통해 후손들에게 권력을 대물림하였고, 이것이 고려 사회의 신분제 고착화를 강화했습니다. 권문세족의 전횡은 단순히 정치적 부패의 문제를 넘어서 백성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 2024.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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