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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돌아보기/한국역사 韓國歷史

고려의 멸망

by 경청 2024.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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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멸망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수 세기 동안 누적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결과였습니다. 

 

1. 권문세족(權門勢族)의 전횡과 사회적 모순

 

고려 말기, 권문세족은 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정치, 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토지 사유화를 통해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국가의 조세 제도를 무력화하여 국가 재정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왕권은 약화되었고, 권문세족은 중앙 정치에서 관직을 독점하며 정치를 사사화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음서제(蔭敍制)**와 같은 제도를 통해 후손들에게 권력을 대물림하였고, 이것이 고려 사회의 신분제 고착화를 강화했습니다.

 

권문세족의 전횡은 단순히 정치적 부패의 문제를 넘어서 백성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었고, 농민 반란과 같은 사회적 갈등이 점차 심화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만적(萬積)의 난은 고려 말 농민과 노비들 사이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반란으로, 권문세족의 억압적 통치에 대한 저항의 일환이었습니다.

 

2. 외침(外侵)의 빈발 -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

 

고려 말기 외적의 침입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습니다. **왜구(倭寇)**는 14세기 후반부터 남해안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침략하였고, 고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군사적 자원을 집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권문세족의 정치적 무능과 군사 체제의 약화로 왜구에 대한 효과적인 방비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은 고려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홍건적은 중국 원(元) 말기의 농민 반란 세력으로, 1359년과 1361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였습니다. 그들은 개경(開京)까지 점령했으며, 고려는 일시적으로 수도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공민왕(恭愍王)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군사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권문세족의 반발로 인해 제한적인 성과만을 거두었습니다.

 

3. 신흥 무장 세력의 대두 -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와 무인들

 

고려 후기에 들어 권문세족의 전횡에 맞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성리학(性理學)**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정치 이념을 지지하며, 권문세족의 부패와 전횡을 비판했습니다. 신진사대부의 핵심 인물로는 정도전(鄭道傳), 조준(趙浚), 권근(權近) 등이 있으며, 이들은 후에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특히 신흥 무장 세력인 **이성계(李成桂)**는 군사적 역량을 바탕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성계는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치면서 명성을 쌓았고, 그의 군사적 성공은 신진사대부와 결합하여 정치적 세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4.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과 정치적 변화

 

고려 말 명(明)나라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자, 고려 정부는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당시 국내의 상황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사불가론(四不可論)**을 주장하며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벌이 강행되자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威化島)**에서 군대를 돌이켰습니다. 이를 위화도 회군이라 하며, 이 사건은 이성계가 고려 정부의 실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성계는 회군 이후 실권을 장악하여 정치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공양왕을 옹립하였지만, 실제 권력은 이성계와 그를 지지하는 신진사대부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5. 조선 건국(朝鮮建國)

 

이성계는 조준, 정도전 등과 함께 고려의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 불교 중심의 사상에서 벗어나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1392년, 이성계는 결국 공양왕을 퇴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조선(朝鮮)**을 건국하였습니다. 이는 고려 왕조의 공식적인 멸망을 의미하며, 475년에 걸친 고려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6. 고려 멸망의 역사적 의의

 

고려의 멸망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했습니다. 고려는 문벌 귀족과 불교를 중심으로 한 사회였으나, 조선은 신진사대부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권문세족의 몰락과 토지 제도의 개혁, 유교적 사회 질서의 확립이 이루어졌습니다.

 

고려의 멸망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지만, 이후 **조선 왕조(朝鮮王朝)**가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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