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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돌아보기/고향여행 故鄕旅行

김해김씨 시조 할머니 - 허황옥

by 경청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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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후의 탄생지

 

 

 

허왕후 묘 "보주태후허씨릉"
구산동 소재

 

 

서기 48년에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허황옥(許黃玉, 32~189)의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인도 북부 갠지스강 중류의 아요디야(Ayodhya)가 아니라 남동부 해안의 같은 이름을 가진 아요디야 쿠빰(Ayodhya Kuppam)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허왕후가 “나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출신의 공주”라고 말한 바에 따라,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아유타국의 뿌리를 찾아왔고, 결국 인도 최대 주인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의 아요디야를 허왕후의 출신지로 확정하게 되었다. 이는 아유타와 발음이 유사한 지명 가운데 아요디야가 가장 흡사했기 때문이다. 아요디야는 ‘싸움이 없는 곳’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Sanskrit, 힌디어의 뿌리)로, 당시에는 그 발음이 ‘아요다(Ayodhya)’였다.

 

이에 따라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가문 등이 주도하여 아요디야 지역에 ‘가락공원’을 조성하였고, 경남 김해시는 아요디야와 자매결연을 맺고 허왕후의 유적지를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도에는 아요디야라는 지명이 두 곳 더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중 하나는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州)의 해안가 마을 아요디야 쿠빰이다. 이러한 사실은 허왕후의 출신지가 인도 북부의 아요디야가 아니라, 남부의 아요디야 쿠빰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허황옥이 인도 북부의 아요디야에서 출발했다면,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거슬러 내려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 2000년 전의 항해 기술로는 강을 따라 동아시아로 향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남부 아요디야 쿠빰은 벵골만과 인접한 해안가 마을로, 바닷길을 이용해 동아시아로 항해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또한, 《삼국유사》에 언급된 파사석탑(婆娑石塔)은 주로 인도 동부 해안에서 발견되는 특수한 돌로, 허왕후가 이 지역 출신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여겨진다.

 

허왕후가 가야에서 사용한 언어와 타밀어의 유사성도 주목할 만하다. 타밀어와 우리말은 수백 개의 단어에서 유사성이 있으며, 어순도 비슷하다. 허왕후가 자신의 고향 말을 가야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이 우리말에 남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언어적 유사성은 허왕후가 인도 남부 타밀나두 출신일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또한, 드라비다족(Dravidian)은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였으며, 허왕후가 자신의 아들 중 두 명에게 허씨 성을 부여한 것도 이러한 전통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허왕후가 김해에 도착했을 때 지닌 비단과 장신구들도 아요디야 쿠빰 인근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다양한 근거를 통해 필자는 허왕후의 출신지가 인도 북부의 아요디야가 아니라 남부의 아요디야 쿠빰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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