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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덕황씨 시조

by 경청 2024.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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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덕 황씨(懷德 黃氏)는 대전광역시를 관향으로 하는 유서 깊은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고려 시대의 황윤보(黃允寶)이다. 그는 고려 말기에 지문성부사(知文成府事)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하였으며, 고려 왕조를 보필한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추대되어 회천군(懷川君)에 봉해졌다. 황윤보의 묘소는 현재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후손들은 대대로 학문과 관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가문의 명성을 이어왔다.

역사

회덕 황씨의 시조 황윤보는 고려 시대에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고, 공신으로서 왕조에 기여한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 말기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도 탁월한 행정 능력과 충성으로 왕조를 지켰고, 이로 인해 회천군이라는 봉작을 받았다. 그의 후손들은 대전 일대를 중심으로 가문을 형성하며, 회덕을 본관으로 삼아 명문 가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황윤보의 4세손인 황자후(黃子厚, 1363년 ~ 1440년)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서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올랐으며, 조선 초기에는 호패법(號牌法)을 건의하여 법으로 제정케 하는 등 뛰어난 행정가로 평가받았다. 황자후의 아들 황유(黃裕)는 조선 태종의 서녀인 숙안옹주(淑安翁主)와 혼인하여 부마(駙馬)가 되었고, 회천위(懷川尉)에 봉해졌다. 이를 통해 회덕 황씨는 조선 왕실과도 인연을 맺게 되면서 가문의 위세는 더욱 확고해졌다. 또한, 황유의 현손 황삼성(黃三省)은 1552년(명종 6)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헌납, 홍문관 교리 등 청렴한 관직을 두루 거쳤고, 조선 왕조의 관리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황삼성의 손자 황덕부(黃德簿)는 홍문관 전한까지 오르며, 회덕 황씨 가문은 학문적, 정치적으로 꾸준히 발전하였다. 회덕 황씨는 이후로도 수많은 학자와 관료를 배출하며 조선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예학의 대가로 알려진 황종해(黃宗海)는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광해군 때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김장생(金長生)을 찾아가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며, 그의 저서 『후천집(朽淺集)』은 당시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본관과 집성촌

회덕 황씨의 본관인 회덕(懷德)은 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동구, 대덕구 일대에 해당하는 옛 지명이다. 이 지역은 본래 백제 시대 우술군(雨述郡)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비풍군(比豊郡)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시대에 회덕현으로 바뀌었다. 1413년 조선 태종 때 군현제로 재정비되면서 회덕현으로 확정되었고, 이후 조선 시대 내내 회덕 지역은 명문 가문들의 중심지로 명맥을 이어갔다. 회덕 황씨의 주요 집성촌으로는 대전광역시 동구를 비롯해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천안시 풍세면 등이 있다. 이 지역들은 회덕 황씨 가문의 후손들이 오랫동안 거주하며 집성촌을 형성한 곳으로, 많은 후손들이 여전히 이곳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회덕 황씨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윤보와 그의 후손들, 특히 황유, 황삼성, 황종해 등이 있다. 황유는 조선 태종의 부마로 회천위에 올랐고, 그의 후손들은 학문과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조선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로 활동하였다. 황종해는 학자로서 성리학과 예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김장생의 제자로서 예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의 저서 『후천집』은 당시 예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황덕부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관료로, 홍문관 전한을 지내며 조정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성리학 연구는 후대 성리학자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었으며, 그는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로 기억된다.

문화재와 유적지

회덕 황씨 가문의 중요한 문화재 중 하나는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위치한 미륵원지(彌勒院址)이다. 이곳은 고려 시대에 황윤보에 의해 건립된 유적으로, 회덕 황씨 가문이 지역 사회에서 펼친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미륵원지는 현재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후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대의 회덕 황씨

회덕 황씨 가문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많은 후손들을 두고 있으며,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약 8,385명이 전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들의 활동 범위는 대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퍼져 있으며, 그들의 뿌리 깊은 전통은 여전히 후손들 사이에서 소중히 계승되고 있다.

결론

회덕 황씨 가문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학문, 사회적 봉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명문 가문이다. 시조 황윤보와 그의 후손들은 가문을 번성하게 하였으며, 특히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를 통해 가문의 위세를 더욱 확고히 다졌다. 또한, 황종해와 황덕부 등은 학문적 업적으로 가문의 명성을 드높였으며, 지역 사회에서는 미륵원지와 같은 유적을 통해 그들의 봉사와 나눔의 정신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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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공파(익산)] 시재 각파이동

 

회덕황씨 대동무술보 발간

 

남루(재실)

 

미륵원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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