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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돌아보기/우리동포 以北同胞

북한명소 - 을밀대 乙密臺

by 경청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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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乙密臺)는 북한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을밀봉 일대에 위치한 역사적인 정자입니다. 이곳은 고구려 시대 평양성의 방어를 위한 중요한 누대 중 하나로, 북한의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 역할을 했으며, 현재의 을밀대는 조선 숙종 40년(1714년)에 보수된 후 1960년에 한 차례 더 개수되었습니다. 이곳은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주변 경치가 뛰어나 관광지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름과 유래

을밀대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설화가 전해집니다. 첫 번째 설화는 을밀선녀(乙密仙女)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로, 을밀대는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인 을밀 장군이 평양성을 지키며 싸운 장소라는 전설도 있습니다. 또한, ‘을밀대’라는 이름은 순우리말인 '웃미르터' 혹은 '웃밀이언덕'을 이두로 음차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구조와 건축

을밀대는 벼랑 위에 위치해 있으며, 높이 약 11m의 축대를 둘러쌓고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정자를 설치한 구조입니다. 정면은 3칸(7.46m), 측면은 2칸(5.29m)으로 되어 있으며, 정자의 기둥은 1m 정도의 4각 돌기둥 위에 흘림기둥을 이어 세운 형태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현재의 을밀대는 조선 숙종 시기에 축대가 보수되면서 다시 세워졌으며, 정자에 걸린 현판은 일제강점기 서예가인 호정(盧元相, 1871~1926)이 쓴 것입니다.

경관과 문화적 의미

을밀대는 평양8경 중 하나로 '밀대상춘(密臺賞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봄철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대동강과 하중도 능라도의 풍경, 그리고 평양 평야의 넓고 수려한 모습이 일품입니다. 이러한 경치로 인해 을밀대는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경치를 감상하는 누각으로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강주룡의 을밀대 농성 사건

을밀대는 한국 노동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1931년 5월 29일, 일제강점기 당시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던 강주룡 열사가 을밀대 지붕에서 임금 삭감에 항의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강주룡 열사는 고무공장 사측의 일방적인 임금 10% 삭감에 반대하여 파업을 이끌었으나, 경찰의 탄압으로 인해 을밀대에 올라 농성을 벌였고, 이는 『동아일보』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기억되며, 강주룡 열사는 결국 임금 삭감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병사했습니다.

서울의 평양냉면 전문점 '을밀대'

을밀대의 이름을 딴 평양냉면 전문점이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굵고 부드러운 메밀면과 은은한 육수 맛이 특징이며, 다른 유명 평양냉면 가게들과 함께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은 평양냉면 외에도 비빔냉면, 회냉면, 수육, 녹두전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며, 계절과 관계없이 대기줄이 길기로 유명합니다.

 

=== 관련 내용 ===

이렇게 을밀대는 역사 속에서 군사적, 문화적, 영적인 의미를 가진 장소로 여러 전설과 실화가 얽혀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 유래와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을밀대(乙密臺)는 북한 평양의 평양성 안에 위치한 누각으로, 고대부터 역사적 의미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누각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을밀대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전설은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가 수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살수대첩의 영웅으로 유명합니다. 을지문덕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평양성으로 돌아왔을 때, 을밀대에서 수나라 군대를 내려다보며 고구려의 힘을 과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을밀대가 지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을지문덕 장군의 위대한 승리와 전략이 을밀대에서 기획되었다는 전설이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왔습니다.

을밀대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다양한 전설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는 고구려 시대에 아름다운 궁녀 '을밀'이 이곳에서 바람을 피하며 평양의 경치를 즐겼다는 전설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을밀'이라는 단어가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이 누각이 하늘과 통하는 영적인 장소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을밀대는 중요한 누각이었으며, 여러 왕들과 관료들이 이곳을 방문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을밀대는 평양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평양을 방어하거나 군사적인 전략을 세울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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