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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돌아보기/한국역사 韓國歷史

조선 朝鮮

by 경청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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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도지도

 

조선(朝鮮, Chosun 또는 Joseon, 中世 한국어: 됴ᇢ션·귁)은 한반도에 있던 옛 국가이다. 1392년 李成桂(이성계)가 건국하여 1897년 高宗(고종)의 칭제건원(稱帝建元)으로 大韓帝國(대한제국)이 세워질 때까지 존속하였다. 수도는 지금의 서울특별시인 漢陽(한양)이었으며, 鴨綠江(압록강)과 豆滿江(두만강)을 경계로 滿洲(만주) 및 연해주와 국경을 이루었다.

 

조선의 정치는 儒敎(유교)의 한 갈래인 性理學(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삼아 士大夫(사대부)를 근간으로 한 중앙집권적 官僚制(관료제)로 운영되었다. 조선의 國王(국왕)은 이론적으로는 전제군주의 지위를 가졌으나, 스스로를 절제함으로써 兩班(양반) 관료와 타협하여 정치를 이끌었다.

 

양반 관료는 초기에 訓舊派(훈구파)와 士林派(사림파)로 나뉘어 갈등했으나, 中期 이후 사림파가 득세하면서 여러 政派(정파)로 나뉘어 경쟁하는 朋黨政治(붕당 정치)를 형성하였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 사색당파로 굳어지던 붕당 정치는 성리학의 학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禮訟論爭(예송논쟁)이나 湖洛論爭(호락논쟁) 같은 주제가 정치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19세기에 이르러 勢道政治(세도 정치)가 등장하면서 붕당 정치 체제는 쇠퇴하였다.

 

조선의 軍事(군사)는 초기 五衛(오위) 체계로 편성되었다가, 이후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한 防禦(방어) 체계를 구축한 鎭管制(진관제)와 이를 보완하는 制勝方略(제승방략)을 핵심으로 삼았다. 이러한 전략은 壬辰倭亂(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급작스러운 외침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 부각되었고, 訓鍊都監(훈련도감)을 시작으로 五軍營(오군영)의 중앙군을 두고 각도에 속오군을 설치하여 지방을 방어하는 체계로 변모하였다. 軍事的(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備邊司(비변사)는 상설화되며 議政府(의정부)를 제치고 실질적인 政治 의결 기구로 변모하였다.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은 지역에 할거하며 토지를 소유한 地主(지주)로서 農業(농업)을 중시하는 經濟政策(경제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조선의 경제는 貨幣(화폐)보다 現物(현물)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당수의 교환이 상호간의 호의로 이루어지는 互惠經濟(호혜경제)의 형태를 띠었다. 商品 교환과 國家의 租稅收取(조세 수취), 分配 등이 혼재하는 가운데, 조선 전기 및 중기의 상업은 金難廛權(금난전권)을 부여받은 독점적 상인들이 주도하였다. 자유로운 상업활동은 申海通共(신해통공) 이후에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적인 상업망이 발달하고 五日場(오일장) 같은 定期市場(정기 시장)이 활성화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傳統市場(전통 시장)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공식적인 신분제는 良人(양인)과 賤民(천민)으로 구분하는 良賤制(양천제)였으나, 실제로는 양반, 中人(중인), 常民(상민), 천민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조선의 문화는 주변 국가들의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한옥, 한복, 한식 등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문화적 발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조선은 500여 년 동안 이어진 국가로, 그 기간 동안 세계 역사는 근세에서 근대로 큰 변화를 겪었다. 조선 역시 이 기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시기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조선의 시기를 前期(전기)와 後期(후기) 또는 初期(초기), 中期(중기), 후기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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