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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돌아보기/인물탐방 人物探訪

두보 (杜甫, 시성 詩聖)

by 경청 202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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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杜甫, 병음: Dù Fǔ 두푸, 712년 ~ 770년)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이다.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이며, 중국 고대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시성(詩聖)'이라 불린다. 그의 작품은 '두시(杜詩)' 또는 '시사(詩史)'라 불리며, 이백과 함께 '이두(李杜)'라고도 칭해진다. 그는 당시 부조리한 경제 구조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을 시로 묘사한 민중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생

두보는 두예(杜預)의 13대손으로, 소릉(少陵) 지역에서 살았으며 조부는 두심언(杜審言)이었다. 그는 진사(進士) 시험에 낙방한 후에도 크게 낙심하지 않고 시를 통해 자연을 즐기며 많은 시인들과 교류하였다.

 

두보는 746년 장안(長安)으로 거처를 옮기고 10년간 벼슬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귀족들의 사치와 민중들의 궁핍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755년, 그가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冑曹參軍)이라는 벼슬에 오른 직후,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발발하게 되었다.

 

안사의 난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그는 가족을 찾으러 떠났다가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장편 시를 남겼다. 이후 그의 삶은 급격히 변하였으며, 반군에 붙잡히기도 하고,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기도 했지만 끝내 파직되고 만다.

 

이후 두보는 여러 지역을 떠돌며 살아갔으며, 청두(成都)에 정착하여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기주(夔州)에서 제2의 시적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끝내 중앙에서 벼슬을 얻지 못하고 770년, 뱃길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작품 특성과 후세

두보의 시는 현실의 고통을 진지하게 묘사한 《병거행(兵車行)》 같은 작품이 많으며, 시를 통해 역사를 기록한 '시사(詩史)'라 불린다. 그는 율시(律詩)를 완성하고 서정시와 서사시를 집대성했다.

 

그의 시 중에서 유명한 절구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벽(江碧)

江碧鳥逾白 (강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燃 (푸른 산에 꽃은 불타는 듯)
今春看又過 (이 봄 또 지나가는데)
何日是歸年 (어느 날이 돌아갈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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