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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돌아보기/한국인물 韓國人物

이순신 장군

by 경청 201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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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 이순신(李舜臣)은 1545년 한성 건천동(見川洞, 현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 邊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건천동에서 보냈으며, 청소년기에는 외가인 아산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은 1522년(중종 17년) 생원시 2등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이백록은 조광조(趙光祖)의 죽음과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해 주변 인물들이 처형당하자, 한양을 떠나 용인 고기리에서 은거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이로 인해 이순신의 부친 이정(李貞)은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43세경 외가 근처인 아산 음봉으로 이사하였다. 후에 이순신 또한 상주 방씨(尙州 方氏)와 혼인하여 그곳에 정착했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한편,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묘사된 이순신의 가난한 시절은 사실이 아니다. 이순신의 어머니 변씨(邊氏)의 문기(文記)에는 이순신과 그의 형 요신(堯臣)이 외거노비 6~8명과 충남 은진(恩津) 지역의 토지를 증여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1588년 이순신의 부인 방씨가 4형제에게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 기록도 존재한다.

 

임진왜란 이전 — 문신(文臣)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이순신은 20대에 무예(武藝)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28세에 무과(武科)에 응시하였으나 말이 넘어지는 사고로 실패하고, 4년 뒤인 1576년(선조 9년) 32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그는 북방 함경도에서 여진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수비를 강화하였으나, 1587년 녹둔도(鹿屯島) 전투에서 패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 이 패전은 상관인 이일(李鎰)의 모함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순변사(巡邊使) 휘하에서 여진족 장수 우을기내(于乙其乃)를 사로잡아 죄를 사면받았고,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1589년 정읍현감(井邑縣監)에 임명되어 칭송받는 선정을 베풀었다.

 

임진왜란 — 1592년 음력 4월,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에서 수군을 정비하고 옥포해전(玉浦海戰), 사천해전(泗川海戰), 한산도 대첩(閑山島大捷)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한산도 대첩에서 학익진(鶴翼陣)을 구사하여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며, 일본의 서해 침략과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지켜냈다.

 

최근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 실체가 확인되었다. 전라남도 고흥의 녹동 쌍충사(雙忠祠)본 초상화로, 이는 서울교육박물관이 소장한 《증정 중등조선역사(贈呈 中等朝鮮歷史)》 속에 등장한 그림이다. 이 초상화는 근·현대에 그려진 것과 달리, 이순신의 막하 승병이 그렸다는 전승이 있어 상상 속의 이순신이 아닌 실제 모습에 가까운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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